인상파의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명인 마네가 의외로 인상파 전시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인상파를 이야기할 때 마네라는 화가를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마네가 그린 도시 풍경은 변화해 가는 19세기 중반과 후반 파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인상파 화가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당대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싶어 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일단 마네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법률가이고 어머니는 주스웨덴 프랑스 대사의 딸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평생 자기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운 좋은 인물이었고 전형적인 부르주아였다. 하지만 마네는 부르주아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마네의 주제를 크게 보면 파리의 카페들, 파리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 파리의 거리, 파리지앵들, 경마 등이 있다. 마네는 파리라는 점점 커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편린들을 그리려고 했고 특히 그 부분을 미화하지 않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던 것이 마네의 의도였다. 마네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림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이는 마네가 당시 파리지앵의 삶을 미화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파리는 점차 커지고 화려해지고 있었다. 대로가 늘어나면서 나폴레옹 3세 시대에 오스만 남작이 파리의 도시계획을 단행하면서 좁은 길, 골목들이 사라지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쭉쭉 뻗어 가는 대로들이 파리의 동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대로변에 상점들이 나날이 생기고 1852년 세계 최초의 백화점 오봉 마르쉐가 개업하고 카페와 극장들이 늘어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카바레 물랑루즈도 1889년 파리에서 문을 열었다. 신문과 잡지의 발간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따라서 사람들이 새로운 일거리를 많이 요구했고 그런 수요에 맞춰서 공급도 늘어났다. 파리는 귀족의 도시라고 하기보다는 부유한 시민의 도시이기도 하다. 베르사유로 궁정이 옮겨지면서 파리에는 귀족들의 집, 여성들의 살롱, 극장 이런 것들이 늘어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부터 파리는 부르주아의 도시로 커가고 있던 것이다. 마네 본인이 부르주아의 삶을 살았고 평생 부르주아 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현대적이고 이기적이고 세련되고 적당히 속물적이기도 한 도시인의 모습을 자신의 직관을 담는 동시에 객관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마네가 그린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1862)’는 파리의 궁은 없어지고 남은 정원에서 열린 야외음악회를 그린 작품이다. 음악회의 모습이 아니라 음악회의 온 청중들의 모습을 그렸다. 야외음악회의 온 청중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 일 것이다. 남성들은 실켓을 쓰고 있으며 모두 세련된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고 여성들은 모자를 썼으며 일부는 베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그림 왼편 끝에 마네는 본인을 그려 넣었다. 본인의 얼굴을 끝에 넣은 것은 고전적인 라파엘로라던가 엘 그레코 같은 화가들이 쓰던 수법인데 이것을 보면 마네는 고전을 무시한 화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마네는 고전에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던 화가인데 고전에서 배운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스타일이 당대 파리지앵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네가 일으킨 여러 가지 스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조르조네와 티치아노가 그린 전원의 음악회 구도를 차용해서 그린 풀밭 위의 점심이다. 마네는 원래 루브르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익혔고 또 일찍이 스페인을 방문해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기 때문에 늘 고전을 통해서 19세기 후반 파리인들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데 관심이 많았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그림에서도 4명의 남녀 그리고 전원풍경이 등장하고 마네가 1863년에 발표한 ‘풀밭 위의 점심’에서도 똑같이 4명의 남녀 전원풍경이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고전을 차용해서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림에 대한 대중의 평은 완전 상이했다. ‘풀밭 위의 점심(1863)’이라는 작품에서는 두 명의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의 옷을 벗은 여자가 등장한다. 옷을 벗고 있는 평범한 여성을 본 대중은 이 그림에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다. 마네가 고전을 통해서 자신들인 특히 파리지앵을 모욕하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네는 조르조네라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화가가 그리다 미완성으로 남겨서 그의 제자인 티치아노가 완성한 ‘전원의 음악회’라는 작품을 보고 이 그림을 토대로 ‘풀밭 위의 점심’을 그렸다. 조르조네가 그린 ‘전원의 음악회’에서는 두 명의 악사가 곡을 연주하고 있고 그 음악을 뮤즈인 여신이 함께 연주하고 있는데 이 여신들은 악사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그림은 인간 남성 그다음에 여신인 여성, 음악, 자연 이런 것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설명하는 그림이다. 마네는 이 구도를 똑같이 가지고 왔지만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19세기의 파리 남녀들의 모습이었고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지도 않고 여신처럼 우아하고 완벽하지도 않고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이 점이 파리인들에게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이 ‘풀밭 위의 점심’과 또 그 이후에 발표된 ‘올림피아’ 같은 그림을 통해서 마네의 그림이 매춘을 연상시킨다는 반발이 일어났고 ‘고전을 왜 의도적으로 모욕하느냐’ 라는 식의 비평도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왜 그림이 반드시 고상해야만 하는가, 그림은 현재 상황을 그리면 안 되는가?”라고 답한다. 그는 도시와 도시인에 모습에 대해서 그 모습들이 아름답고 우아하지 않더라도, 추하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고 할지라도 진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그 부분에서 파리지앵들과의 생각, 비평가들의 생각과 엇갈렸다.
마네는 아름답지 않은 그림이라는 당대의 부정적 시각과 평생을 싸워야 했지만 회화의 형식과 역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동시대 다른 화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마네는 현대사회의 다양함이 응축되어 있는 그림을 그려주었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미지를 통해서 진실을 보여준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가치와 의의는 한마디로 역사가 아니라 당대를 그린 것이다. 르누아르가 “14세기 화가들에게 지오토가 가장 중요했듯이, 지금 우리에게는 마네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동시대 화가들이 마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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