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화가가 아니다. 생계를 위해서 열세 살 때부터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으며 성인이 되고 파리로 이동해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 들어갔다. 그 화실에서 동료인 모네를 만나 본격적으로 인상파에 투신하게 된다. 르누아르는 본인이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그의 그림에는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고 그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우산(1886)’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가 막 오기 시작한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계절은 초여름으로 추정되는데 사람들이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우산을 막 펼치고 있다. 왜냐하면 19세기 중반까지 우산은 상당히 무거웠고 가격도 비싸서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1851년 런던에서 만국박람회에서 가볍고 값싼 우산이 새로운 공산품으로 전시가 됐다. 이후 우산이 대중화되면서 일반적인 시민들도 우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파리 여름에 비는 흔치 사람들은 새로 장만한 우산을 모두 쓰고 있다. 그림의 오른편에 부유해 보이는 여성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고급 옷을 입은 두 딸을 데리고 가고 있다. 그에 비해 왼편에는 아무 장식도 없는 옷을 입은 여성이 빈 바구니를 들고 걸어가고 있는데 이 여성이 바로 그리제트다. 아무 무늬도 없는 단순한 옷을 입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별로 여유가 없는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산도 없다. 르누아르 특유의 윤곽선을 뭉개는 파스텔화를 그린 듯한 기법이 유독 이 여성에게는 그리제트를 그린 윤곽선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이 그림은 1881년부터 1886년까지 총 5년에 걸쳐 그려졌기 때문이다. 르누아르가 중간에 그림을 그리다 잠시 중단했는데 그때 기법이 달라졌다. 1881년에는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러운 선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후에 앵그르 시대에는 르누아르가 윤곽선을 조금 더 분명하게 그리는 고전파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있었다. 이 당시에 그리제트인 여성을 그렸기에 대상들을 표현하는 윤곽선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상반된 스타일을 한 작품에 볼 수 있는 드문 작품이다. 그림을 전반적으로 푸른색을 사용하여 그렸기 때문에 그림에 비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전체의 푸른 색감과 우산을 통해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림에서 하녀를 등장시킴으로써 그는 당시 파리에 와서 노동하는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에게 심정적인 동질감이나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각에서 우리는 르누아르의 대장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해석할 수 있다. 인상파 작품들의 크기는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유는 인상파는 기본적으로 바깥에 나가서 햇빛 속에서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을 그리는 것이 인상파의 중요한 강령이었기 때문에 캔버스를 들고 바깥에 나가서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인상파들의 풍경화는 주로 크지 않은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작품은 상당히 큰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르누아르가 1876년부터 1877년까지 1년을 그려서 3회 인상파 전시에 출품한 작품인데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지금도 몽마르트르에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이 당시에는 큰 댄스파티를 일요일 오후마다 열었다고 하는데 몽마르트르 자체가 파리의 산동네라서 집세가 가장 저렴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이 댄스파티에 오는 젊은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젊은이들은 아니었다. 대게는 르누아르 본인처럼 몽마르트르에서 셋집을 얻어서 살면서 공장이라던가 점원 또는 하녀 일을 하는 여성들이었고 남성들도 르누아르의 친구들이었는데 남녀의 모습을 온화하고 행복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에 남녀가 등장하는데 남성들은 화가의 친구들이고 여성들은 몽마르트르에 살던 르누아르의 이웃 처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술을 놓는다던가 아니면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다. 르누아르는 주인공들의 젊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강조했지 그들이 경제적으로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느낌은 일체 그림에 보이지 않는다. 르누아르의 유명한 말 중에 ‘그림 속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가 있는데 르누아르 본인도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30대 중반이었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그림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한 마디로 르누아르는 파리의 낭만적인 보헤미안이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헤미안의 꿈을 그림 속 젊은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려 하였다.
그림에서 일요일 오후 한낮의 햇빛이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투과해서 밑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림 속 얼룩덜룩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림에서 인물과 사물들이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반사광은 그림에서 온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그림 속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르누아르의 친구들이고 뒤쪽에 그려진 사람들은 모두 실제로 댄스파티에 온 사람들이다. 모두 행복한 모습이며 자신들의 젊은 날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르누아르는 현실적, 경제적으로 힘든 모습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상황이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현실이지만 당시 파리에 꿈을 품고 올라온 낭만적인 화가였기에 의도적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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