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 작품은 대부분 신비로운 동시에 어두운 느낌이 있다. 그가 그린 환영과 같은 작품들이 왜 만들어졌나 하면 황금시대 당시에도 스페인은 모순된 국가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제국이었지만 서민의 삶은 비참했다. 지금도 스페인은 기후가 덥고 비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올리브, 오렌지와 같은 몇 개의 작물을 제외하면 식용작물이 잘되지 않는 지역이다. 매일 먹을 수 있는 감자나 보리, 밀 같은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스페인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그런 식용 작물을 외부 국가에서 수입해 와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전쟁 혹은 가톨릭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한 거대한 성당을 건설하는 데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특이하게도 16세기 스페인은 국가는 잘 사는데 서민의 삶은 비참한 그런 모순된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이런 모순 속에서 현실을 포기하고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버리기를 택한다. 이때, 돈키호테라는 소설이 나왔고 스페인 민중은 열광했다. 1605년에 초판이 나온 돈키호테는 테라칸 기사다. 레콘키스타가 끝나고 난 후 기사 계급은 할 일이 없어졌다. 레콘키스타 후에 몰락한 기사 계급의 현실을 보여주는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는 굉장히 어떤 때는 차분하고 지적인 인물이다가 갑자기 창을 들고 풍차로 돌진 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쓴 세르반테스 본인이 레판토 해전에 참전한 상이 군이고 몰락한 기사계급 이었기 때문에 레콘키스타 이후로 국가가 부흥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 그런 모순된 상황. 현실과 환영이 오가는 그런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제 신비주의가 만연하면서 파스칼은 스페인의 모순을 말한다. “피레네산맥 이쪽에서는 참인 것이 저쪽에서는 거짓이 되어 버린다”. 그런 식으로 스페인에서는 참과 거짓, 현실과 환영이 오락가락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필리페 2세는 종교적인 광신 때문에 강력한 종교재판으로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들은 모두 종교재판에 회부해 버렸다.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현실과 환상의 중첩, 불안, 공포, 어둠, 또 신앙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 바로 엘 그레코의 회화다. 엘 그레코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그 이름 자체가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에서 태어나서 베네치아에서 그림을 배우고 톨레도에서 정착했는데 처음에 톨레도에 온 이유는 스페인의 왕실 궁정화가가 되기 위해서였는데 결국 궁정화가가 되지는 못했다. 그의 작품은 환상적인 색채감과 또 부자연스럽게 늘어난 인물도 빛을 발하는 듯한 현란한 어지럽고 비현실적인 구성 등이 등장한다.
초창기 작품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작품은 1275년에 사망한 십자군의 기사이기도 했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때 2명의 성인 성 스테파누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나타나서 그의 매장을 도왔다는 전설을 그의 무덤이 있는 톨레도에 산토도메 교회 벽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초창기 그림이니까 상대적으로 좀 정돈되어 보이지만 한 그림의 환상과 또 장례식이라는 현실이 함께 그려져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현실에서는 백작이 막 무덤에 묻히고 있다. 그런데 황금빛 제의를 입은 2명의 성인이 나타나서 그의 매장을 돕는다. 백작의 환영을 톨레도 유지들이 다 보고 있는데 그들은 별로 놀란 얼굴이 아니다. 그들은 이 상황을 오히려 차분하게 일상처럼 바라보고 있다. 그림 왼쪽 끝에 수사, 오른쪽 끝에 신도가 있어서 그림 속 어떤 경계선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그림 하부에 있는 현실에는 사람들이 삐딱하게 들어차 있고 차분해 보이는 현실에 비해서 그림의 상부는 완전한 환영이다. 백작의 몸에서 막 빠져나간 영혼이 천사의 품에 안겨 있다. 천사는 이 영혼을 위에 있는 천상의 예수에게 갖다 바치려는 듯한 그런 제스처를 하고 있고 예수의 발밑에는 각각 성모마리아와 세례 요한 그리고 성인들이 있다. 이 환상의 세계에서 오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고 모든 것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다. 이렇게 현실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환영과 또 현실 자체를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렸는데 별로 어색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16세기 스페인의 현실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엘 그레코의 작품은 점점 더 환영의 느낌, 신비로운 느낌이 강해진다. ‘요한계시록의 다섯번째 환상’ 작품을 보면 무덤에서 영혼들이 일어나고 있고 무릎을 꿇은 요한이 보이는데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분위기는 불길하고 신비로운 환상 속에 쌓여 있는 느낌을 준다. 만년에 갈수록 엘 그레코의 그림은 현실보다 종교적 신비에 몸을 던진 듯한 느낌을 준다. 즉 영적 세계 묘사에 집중하는 그림들이 많이 등장한다.
엘 그레코의 파격적인 그림들은 후대 화가들에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엘 그레코는 1500년대 후반보다 1600년대 초반에 톨레도에서 활동했는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뒤 1800년대, 1900년대에 활동한 피카소나 마네, 세잔 같은 화가들이 엘 그레코의 영향을 받았다. 엘 그레코의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은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1890), 모딜리아니의 ‘폴 알렉상드르’ (1913), 마네의 ‘돌아가신 그리스도’ (1864),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1907) 등으로 모두 1800년대, 1900년대에 그려진 그림이다. 엘 그레코와 이 화가들 사이에는 200년에서 300년의 시차가 있다.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간다. 엘 그레코의 ‘라오콘’ 작품을 보면 신비스럽고 불길한 푸른빝으로 채워져 있다.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역시 엇비슷한 푸른빛으로 채워져 있고 두 그림의 사람들 모두 신체의 비례를 신경 쓰지 않은 특징을 볼 수 있다.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에서 한층 더 발전한 작품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작품이다. 역시 비현실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사람들 신체에서 비례를 파괴한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엘 그레코는 시대를 앞서는 화가였고 자기 작품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화가이다. 더구나 그가 살았던 시대 자체가 불안과 환상 속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생존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그의 그림에서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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