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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

by 보통입맛 2023. 11. 16.

 스페인 화가 엘그레코는 스페인 황금시대의 몰락 당시 민중들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보여주었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황금시대가 몰락할 당시지만 왕실의 위엄과 풍요로움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엘그레코와 벨라스케스는 30년 정도밖에 시차가 나지 않는다. 톨레도에서 엘그레코가 활동했던 것이 1590년에서 1614년 사이면 벨라스케스는 당시 스페인 왕궁에 있던 마드리드에서 1627년에서 1660년 사이에 활동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일단 빛과 운명을 다루는 극적인 특징이 있는 바로크 시대의 느낌을 갖고 있고 엘 그레코와는 다르게 그는 완전한 양지 화가였다. 필리페 4세 당시 스페인 왕은 벨라스케스를 절대적으로 총애했고 1623년 이래 필리페 4세 궁정화가로 벨라스케스는 거의 30년을 봉직했다. 궁정에 자신의 단독 화실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국왕이 벨라스케스의 청을 받아들여서 두 번이나 이탈리아 유학을 보내줄 정도였다. 만년에는 상급 귀족들만 가입할 수 있었던 산티아고 기사단에 임명되기도 했는데 벨라스케스 그림의 특징은 이제 저물어 가는 황금시대의 마지막 위엄을 담은 점이다. 특히 왕족, 귀족, 궁정의 난쟁이와 어릿광대 같은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을 그렸는데 그 초상들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어떤 왕실의 우아함, 품위 같은 것들이 당시 스페인의 마지막 번영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벨라스케스, 1653)’을 보자. 이 작품은 필리페 4세의 9번째 딸이었던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가 두 살에서 세 살 무렵에 그린 초상이다. 공주의 치마에 반짝이는 은실 자수를 대담하게 그린 부분도 눈에 띄고 공주의 정중하면서도 우아한 포즈 역시 눈에 띈다. 3살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부채를 들고 한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공주의 아직 짧은 머리, 표정에서 볼 수 있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공주가 그런 포즈를 취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벨라스케스가 어느 정도 미화해서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아기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왕실의 가장 중요한 일원인 공주라는 직책이 가지고 있는 우아함과 품위를 한 장에 조화시켰고 그 조화는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런 점이 벨라스케스의 장점이었고 이런 부분 때문에 필리페 4세가 벨라스케스를 그토록 총애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대담하고 풍요롭다. 왕자나 공주의 위엄을 과시하는 동시에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을 표현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 과제로 평가되는데 이런 과제들을 벨라스케스는 모두 능숙하게 해냈다.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을 알아보자. ‘록비의 비너스(벨라스케스, 1650)’은 벨라스케스가 두 번째 로마 체류 중에 그린 작품이다. 화장하는 비너스 또는 거울을 보는 비너스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누드화로 당시 스페인에서는 그릴 수 없던 것이다. 스페인은 종교의 엄한 분위기가 심했기 때문에 누드화를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종교재판에 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벨라스케스는 두 번째로 로마 유학을 하러 가서 로마에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림 속에서 우리는 비너스의 뒷모습만 볼 수가 있다. 비너스는 그녀의 순수함과 청순함을 보여주는데 차가운 느낌의 푸른 빛 시트 위에 누워서 화장을 막 마치고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 있다. 비너스이기에 당연히 절세미인일 것이고 화장까지 마쳤으니 얼굴이 아주 아름다운 것이 확실한데 특이하게도 거울 속에 있는 비너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약간 수심에 차 있는 듯하다. 우리는 왜 대체 비너스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그림 속으로 더 다가가게 된다. 그림은 전반적으로 신화 속의 여신이라기보다는 여염집 여인 같은 느낌을 주는데 쳐져 있는 짙은 분홍빛 커튼이라든가 침대 시트라든가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즉,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이 그림 속 유일하게 이 그림의 주인공이 신화 속의 여신임을 알려주는 단서는 거울을 들고 있는 큐피드인데 큐피드의 날개가 이 인물들이 일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신과 여신임을 알려준다. 그가 들고 있는 거울 앞에 분홍빛 리본이 담겨있어서 우리는 거울을 보는 비너스가 왜 수심에 잠겼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비너스는 연애 감정에 빠져있는 것이고 그런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근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벨라스케스는 작품 속에서 자칫하면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소재들을 조화롭게 표현했다.     
 ‘시녀들(벨라스케스, 1656)’은 벨라스케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시녀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이다. 작품의 제목이 시녀들이라 붙은 이유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정리하면서 대체 작품의 제목이 뭐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시녀들’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작품의 왼편에 화가와 캔버스가 그려져 있다. 또한 거울 속에 왕과 왕비의 얼굴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화가는 왕과 왕비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왕이 사랑했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가 그런 자기 부모인 국왕 부부에게 문안을 온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공주에게 시녀들이 붉은 병을 건네주면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전갈을 전하러 온 시동이 보이고 두 명의 난쟁이가 보인다. 이 당시에 궁정은 어릿광대로 난쟁이들을 썼다. 이 장면은 화가, 공주, 시녀들, 궁정의 어릿광대, 궁정의 신하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국왕 부부까지 보여줌으로써 스페인 왕실의 한 장면, 일상을 우아하고 품위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화가 본인과 캔버스를 그림 속에 그려 넣음으로써 30년 가까이 궁정화가로 봉직한 화가 본인의 예술가로서 자긍심도 보여주는 걸작이다.
 이런 식으로 스페인의 황금시대는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확실하게 그 영향력을 보여준다. 엘그레코의 작품은 황금시대의 스페인이 몰락할 당시에 민중들이 느끼고 있었던 불안과 두려움을 보여주고 동시에 벨라스케스의 왕실 그림들은 쇠락해 가고 있는 황금시대이지만 당시에 스페인 왕실이 가지고 있었던 위엄과 풍요로움 그리고 우아함을 그림으로 아주 효과적으로 재현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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