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변화를 보면 기술과 진보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제조업에서 대량 생산 덕분에 공업제품이 증가하였다. 빠른 시대의 변화로 인해 당시 프랑스의 낭만주의 회화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프랑스 회화에서는 2파전 양상을 띠게 된다. 쿠르베, 도미에가 있는 현실을 충실하게 화폭에 옮기는 사실주의 혹은 자연주의와 밀레, 루소가 있는 농촌을 사실적, 낭만적으로 그리는 바르비종파로 나뉘게 되었다. 또한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풍경화, 초상화, 동판화 등이 빠르게 대체 되기 시작했고 화가들은 생존을 위해 변화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사진이 이용한 인화 효과, 노출, 현상 등을 연구하는 화가들이 늘어났다. 그들이 바로 인상파 화가들이다. 인상파의 가장 특징으로 빛의 효과를 연구해 그림에 응용하는 것인데 사진을 연구하여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인상파는 당대의 그 어떤 유파보다 획기적이며, 아방가르드한 혁신적인 유파였다. ‘대중이 처음에 인상파를 이해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대중은 아방가르드적인 시도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상파는 대중의 비난과 호기심이 집중되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졌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인상파는 최후의 국제적이고 가장 강력한 사조다. 인상파 이후에도 나비파, 상징주의, 입체파, 야수파 등이 있지만 인상파처럼 범유럽적으로 나타나는 사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상파의 메카 혹은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은 파리였다. 모네를 비롯한 파리에서 모인 화가들이 처음 전시를 파리에서 열면서 시작한 것이 인상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인상파의 등장과 함께 파리는 로마를 제치고 예술의 수도, 예술의 메카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인상파들이 화제가 된 후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화가들도 파리에 오기 시작했다. 고흐, 메리커셋, 휘슬러, 피카소 같은 각국의 젊은 화가들이 파리로 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파리가 그들의 고국보다 화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았고 다른 화가들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더 나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상파의 전성기는 의외로 길지 않다. 1회 전시가 1874년에 열렸고 8회 전시가 1886년에 열렸는데 이게 전부다. 1886년 전시 이후로 인상파 전시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10년에서 12년 정도 활동했으니 활동 시기는 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상파는 기존 예술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시선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새롭고 주관적인 시선의 그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상파가 가지고 온 이러한 혁신적인 시각이 음악과 문학으로도 확대되었다. 모네의 ‘해돋이 – 인상(1873)’를 보자. 이 그림은 모네가 자기 고향인 르아브르 바닷가에서 해가 뜨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이 처음 인상파전에 출품되었을 때 이 그림의 작품 제목 때문에 인상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의 평은 ‘아무렇게나 막 그린 그림이다’, ‘성의가 없다’와 같은 혹평들이 있었다. 그림에서 선명하게 그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해, 바다, 지평선, 배 모두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바다에서 해가 뜨는 광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아마 해가 떠오르는 눈 부신 빛이 우리의 시각을 거의 마비시킬 것이다. 눈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 해와 해 주변만 어렴풋하게 보일 것이다. 모네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 순간 인간의 주관적인 감각이었다. 실제로 해가 뜨는 광경을 객관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주관을 그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해와 해 주위의 모든 것들은 희미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모네가 해돋이 인상에서 보여준 새롭고 주관적인 시선이다. 또한 그런 인간의 감각, 시각이라는 감각을 화가 자신의 주관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당시의 비평가들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서 말한 미완성의 작품 같다는 혹평이 나온 것이다.
인상파는 빛이 사물에 닿는 순간 사물의 색채와 형태의 변화를 포착해서 화폭에 재현하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인상파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인상파가 아닌 야외에서 빛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외광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빛이 사물에 닿는 순간 시시각각 빛과 대기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물의 모습도 시시각각 우리 눈에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인상파의 강령이었기 때문에 인상파는 야외에서 작업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인물보다는 풍경화를 더 많이 그리게 된다. 그리고 해돋이 인상에서 우리가 본 것 처럼 인상파의 그림들은 대부분 그 형태가 불분명하고 흐릿하기 때문에 미완성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많고 그림 속에서 검은색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햇빛이 있는 야외에서는 모든 것이 햇빛에 의해 반사되어 다른 색으로 바뀌어 보이기 때문이다. 모네가 그린 ‘푸르빌 절벽의 산책’이 전형적인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이다. 바다의 빛깔들이 햇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의 색깔을 화가의 주관을 섞어 표현하고 있다. 전반적인 그림 색채는 환하고 밝다. 바다에서 사물과 사람들이 환한 빛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상파의 주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인상파에서도 차이를 보인 화가가 있다. 바로 우리가 인상파라고 하면 떠오르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에두아르 마네다. 그의 작품 중에는 실외보다 실내 그림이 많고, 검은색도 과감히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물이나 인물의 형태 또한 선명하다. 마네는 인상파 전시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고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은 고답적인 구도와 색채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파로 분류되고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다. 다음 포스팅에는 이 부분을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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