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독일 낭만주의

by 보통입맛 2023. 9. 9.

 역사적 변혁과 발전은 필연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변화에 대해 반응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 방식을 분석할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는 방랑자’ (1818년) 해석하면 단순히 거칠게 파도치는 바다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역사적, 민족적인 함의를 띄고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독일은 통일을 위한 줄기찬 염원과 민족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고 독일의 낭만주의자들 혹은 민족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때까지 통일하지 못한 독일인들에게 하나의 국가로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 했다. 프리드리히는 화가의 입장에서 그림을 그려 이렇게 장엄한 자연을 가진 독일인들은 하나의 국가를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하였다. 이 그림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파도 치는 바다는 웅장한 독일의 영토를 묘사하는 동시에 아직 해결해야 할 고난과 문제들을 의미한다. 그런 자연의 모습을 꼿꼿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성은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갈 차세대 독일인들을 의미하며 이 문제에 맞서 해결하여 독일을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만들 의지를 담고 있다.

낭만주의의 출현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독일의 정치적,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낭만주의 탄생의 배경으로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이 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주로 독일어권 위주로 공격하였다. 하지만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패배하고 그 후 유럽에서 빈 회의가 열린다. 빈 회의의 목적은 나폴레옹이 등장하기 이전 체제인 앙시앵 레짐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독일은 공국과 자유도시로 분열되고 시민 계층은 거듭된 통일의 좌절감을 느낀다. 이러한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의해 독일 지성인들과 독일 청년들은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킨다. 이때 그들의 민족주의 운동이 예술의 투영되는 현상으로 낭만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첫 번째 특징은 절망과 죽음에 대한 동경이다. 당시 낭만주의 예술은 병적인 좌절과 어두운 특징이 있다. 소설, 음악과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은 주로 죽음에 이르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현실 정치에서 맞닥뜨린 좌절과 절망감을 표현하며 죽음에 대한 동경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어두운 동시에 강렬한 특징이 있다.

독일 낭만주의의 두 번째 특징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낭만주의라는 것이다. 첫 번째 예시로 독일 낭만주의의 소설, 오페라와 같은 음악 작품을 보면 고대의 게르만 설화, 중세의 기사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고대의 설화나 중세 배경 작품들이 단순히 낭만주의에 부합해서가 아닌 독일인들에게 통일 운동을 고취하기 위한 의도였다. 두 번째 예시로 그림 형제의 동화집을 들 수 있다. 그들은 1812년에 고대와 중세의 설화들을 묶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을 간행하였다. 그들은 원래 법률가였지만 이렇게 동화집을 만든 이유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 자신들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독일은 본래 한 민족이라는 증거로 독일인에게 민족주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후에 그림 형제는 독일어 사전도 간행하며 문학을 통해 독일인들에게 민족주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세 번째 예시는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볼프, 브람스 등이 독일 민요 멜로디를 채집하거나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가곡과 합창곡을 작곡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 대부분은 독일 고대나 중세의 전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그의 오페라 작품들은 독일의 민족 감정을 열렬히 자극하여 호응을 얻었고 제의, 장례, 순례 등 엄숙한 의식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독일인들에게 조국 재건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후에 20세기 중반 나치의 선전도구로 쓰였으며 이는 그의 작품이 얼마나 강하게 민족주의를 담았는지 알 수 있다.

낭만주의의 시작
낭만주의는 악성 베토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 낭만파 예술의 대표주의자는 미술에서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음악에서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다.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만들어낸 빈 고전주의를 완성한 인물로 고전파 작곡가의 최고봉이고 자신이 만든 고전주의 형식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스스로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간 인물이다. 그는 모차르트가 이루지 못한 경제적으로 독립한 예술가의 꿈을 이룬 최초의 작곡가다. 그는 궁정이나 귀족들에게 연주하며 후원받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작품과 제자들을 가르치며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였다. 베토벤이 구현한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음악이다. 음악의 형식보다 개인의 정신과 감정을 중시하였고 귀족과 같은 지배 계급의 취향을 위한 음악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로 창작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서 그는 파격적으로 가사와 성악을 삽입함으로써 최초의 낭만주의 음악을 탄생시켰다. 이 장대하고 열정적인 하모니는 동시에 독일 민족주의를 자극하였고 이를 통해 베토벤은 ‘악성’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독일인들에게 위대한 정신을 가진 독일인들은 통일된 국가를 이룰 자격이 충분하다는 감상과 해석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은 음악적, 문학적 모두 통일과 성취를 완성한 교향곡으로 평가받으며 낭만주의의 시초가 되었고 후의 여러 음악가는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다.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가 르누아르  (1) 2023.12.07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  (0) 2023.11.16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  (0) 2023.10.31
서양 미술사와 르네상스 시대  (0) 2023.07.19
피카소와 입체주의:큐비즘  (0) 2023.07.11